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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어원및 역사 풍습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by 수다꾼밴열이 2023. 1. 1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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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설날은 한 해의 첫 날을 기리는 명절로,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한국에서 설날은 양력 1월 1일(양력설이자 새해 첫날, 신정)과 음력 1월 1일(음력설, 구정) 모두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본 문서에서는 한국의 전통 명절인 음력 1월 1일 음력설에 관해서만 기술합니다.

음력 1월 1일 설날은 추석과 함께 명절 전날과 다음 날을 포함한 3일이 법정 공휴일인 한국의 대표적인 명절 중 하나입니다. 섣달그믐이 윤달일 경우 윤달만 휴일로 인정되고 평달은 휴일이 아닙니다. 이는 윤12월이 생길 경우 12월 → 윤12월 → 1월 순서대로 달이 바뀌기 때문. 한국의 학기제 특성상 그 학년도 마지막 공휴일이며 전통적으로 겨울방학 또는 봄방학 중입니다.

음력설의 날짜는 음력 1월 1일입니다. 구정(舊正), 정월(正月) 초하루, 음력설로도 불리며 한자어로는 신일(愼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 단월(端月), 원일(元日) 등으로 불립니다.

2. 어원

설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대체로 네 가지의 설(說)이 있는데 새로 온 날이 낯설다는 의미에서 낯설다의 어근인 "설다"에서 온 것으로 본 시각과 한 해가 새롭게 개시되는 날을 의미하는 "선날"이 설날로 바뀌었다고 보는 시각, 한국어로 나이를 의미하는 살과 동계어라는 시각, 그리고 자중하고 근신한다는 의미의 옛말인 "섦다"에서 왔다고 보는 시각들이 존재합니다. 사실 딱히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렸다기보단 저런 의미들이 다 포함되었다고 보는 편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또한, 설 전날을 '까치설'이라고도 하는데, 까치와는 관계없고 작은 설을 뜻하는 '아치설' 또는 '아찬설'이 변한 말이라고 합니다. 어차피 '까치'도 울음소리를 나타낸 말과 작다는 뜻의 '아치'가 합쳐진 말입니다.

3. 역사

설은 곧 새해의 첫 날을 기념하는 날이므로 역법체계가 갖춰져야만 지낼 수 있는 명절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지내던 명절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태음력에서 역법 전체의 기준이 되는 달은 동지가 든 달입니다. 여기에 동짓달을 기준으로 12지를 적용해서, 동짓달이 자월(子月), 그 다음 달이 축월이라는 식으로 나가는데, 역법은 초기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夏以建寅之月, 殷以建丑之月, 周以建子之月爲正
하나라는 인월을, 은나라는 축월을, 주나라는 자월을 정월로 봅니다다
- 춘추 은공 원년조 공영달(孔穎達)의 주석

즉, 하·은·주 어디의 역법을 쓰느냐에 따라서 정월이 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전국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고육력 중 위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역법 중 황제가 만들었다는 황제력과 노나라 역법인 노력은 주나라와 마찬가지로 동짓달 첫날이 새해의 시작이었고, 전욱이 만들었다는 전욱력은 '동짓달 전 달인 해월'(음력 10월)이 정월이 됩니다. 참고로 진시황의 진나라가 전욱력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한무제 때에 하력을 복원시켜서 음력 1월을 설날로 만들고, 동짓달을 11월로 고정했는데, 이것이 태초력입니다. 이후 중국 역법은 수많은 자잘한 수정을 통해서 역법이 완성되어 가는데, 중간에 서양역법이 들어와서 태양태음력이 되었고 그 중 최종본이 청나라대에 완성된 시헌력입니다. 이 때문에 공식적으로 음력 1월이 정월이 되고, 음력 1월 1일이 설날이 된 것은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합니다.

부여가 시헌력 기준 음력 12월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을 볼 때 이미 부여 시절부터 설날의 풍습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인 설날의 풍습에 대한 기록은 신라시대에 전해지는데 수서에 의하면 신라인들은 원일, 즉 새해 첫날에 서로 문안을 드리고 왕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군신들을 격려하며 일월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백제 고이왕(재위: 234년 ~ 286년)이 정월에 천지신명에 제사를 지냈고 책계왕(재위:286년~298년) 때 시조 동명왕에게 정월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설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전통도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중요명절로 설날은 빠지지 않았는데 이는 설날이 이미 오래전부터 중요한 명절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전통적으로는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는 쭉 이어지는 축제 기간으로 이 기간 중에는 빚독촉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을미개혁에 따라 1896년부터 태양력이 시행되면서 음력이 폐지되었으나 양력은 낯선 것이었고 그동안 음력에 맞춰 살아온 사람들은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보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도 마찬가지로 양력 1월 1일이 공식적인 새해 첫날이었고 음력의 과세(過歲)를 구시대의 관습으로 여겨 타파하고자 하였으나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지내던 풍습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에는 신정만 연휴였고 양력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 쉬었으며 음력 1월 1일은 공휴일은 아니었지만 재량에 따라 음력 1월 1일에 휴무하는 기업은 많았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음력에 맞춰 친척과 만나 제사를 지내고 성묘와 세배를 지냈다. 이렇게 태양력 도입 이후에도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여겨 명절로 보내는 풍습은 꾸준히 유지가 되었기 때문에 이에 음력 1월 1일을 공휴일로 지정해야한다는 사회의 목소리는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습니다. 음력 1월 1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한 첫 사례는 1976년이었으나 혼란이 가중된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되었고, 1981년에도 공휴일 지정이 검토되었으나 내무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러던 중 전통 민속 문화를 계승·발전 시키자는 취지로 1985년부터 음력 1월 1일을 민속의 날로 호칭하고 공휴일로 지정되기 시작하였고 1989년부터는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호칭하고 연휴기간을 3일로 연장하여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대신 신정 연휴는 1990년부터 3일에서 2일로 줄이고, 아예 1999년부터는 1월 1일 하루만을 공휴일로 지정하였으며, 명칭도 신정에서 그냥 1월 1일로 변경하였습니다. 이는 근로 효율성 문제를 감안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젊은 세대로 갈 수록 실생활에서 양력의 사용 비중이 늘어나고 있고 음력은 그 비중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설날(음력 1월 1일)을 새해의 첫 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낸다기보다는 연휴 그 자체로서 지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설의 본래 목적인 새해의 첫 날을 기념하는 행사(타종행사, 해돋이 관람 등...)는 양력 1월 1일에 하는 추세입니다. 다만 19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은 과거 한국에서도 양력설을 연휴로 쇘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부모나 조부모 시대에 음력설이 없었고 양력설만이 연휴였다는 것에 놀라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도 연휴로서 신정을 쇠는 집안도 있으며 그런 경우 공무원 집안이 많다고 합니다. 음력설을 쇠지 않았을 시기에는 정부 산하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하여 신정을 쇠도록 독려했기 때문이며, 또 다른 경우로는 가족의 합의에 의해 양가 가족을 모두 방문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한 것도 있습니다. 음력설을 지내지 않는 외국인과 국제결혼을 한 사람이면 문화적 차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두 설날 모두 쇠기 쉽습니다.

일부 중국인들은 춘절이 중국의 전통이라며 한국은 춘절을 베낀 설날을 지내는 걸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바이두에 한국 춘절을 검색해보면 한국에 대한 증오와 함께 정치적으로 압박해서 설날을 없애야 한다는 글이 수백 개가 넘어갑니다. 중국 당국의 자문화중심주의 조장과 사드 설치 이후로 한동안 펼쳐진 반한기조, 더붙어서 자국 문화우월주의, 한국네티즌과의 대립까지 겹치며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상당한 세를 얻었다. 한편으로 반크는 유엔의 "중국 설날" 표기 우표에 대해 규탄하며 유엔의 "중국 설날" 옹호를 무력화하는 청원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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